이력서 업데이트 - 생각

경력이 길어질수록 이력서 및 경력기술서에 적히는 문구들이 더 간단해진다.
쭈구리 시절 경력이고 뭐고 별 것 없었을 때는 어떻게든 좋은 말 많이 첨가해서 칸 채우기 급급했는데
이젠 뺄 건 빼고 쓸 건 써도 꽤 괜찮은 이력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소개는 딱 2마디.
해당 업계 경력 7년. 경험 많은 사람 원하시면 연락주세요.

꽤, 메리트 있어보이지 않나?
연락 할테면 하고, 말라면 말고 느낌! 너 아니어도 갈 데 많아 느낌!

연락주세요. 괜찮은 사람입니다.


초콜릿 향기, 향기나는 풍경의 잔세스한스 - 여행

이른 아침부터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하고 브뤼셀을 떠나야 했다. 딱히 이유는 없었는데, 그냥 그 전날 브뤼셀에 도착하며 다음날 암스테르담 가는 차편을 이른시간으로 미리 예약했다. 사실 털어놓자면, 이 때까지 유레일 패스 사용법을 몰라서 미리 예약을 하고 다니는 푼수짓을 잠깐 했더랬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전날 우중충하던 브뤼셀은 어디가고, 2GO4 호스텔을 나오던 그날 아침은 너무나도 맑고 상쾌했다. 문을 나서자 마자 바람막이만 대충 둘러입고 바로 이어폰을 꼈던 것 같다. 무슨 노래였지? 아무튼 그 모든 조합이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Earth,wind&fire 노래였나, 그 풍경을 떠올리니 그 노래가 바로 귀에 맴도는 걸 보니. 돌이켜보면 내가 곧 도착할 잔세스한스의 풍경이 그날 아침부터, 떠나는 브뤼셀에서부터 시작된 듯 하다.

사실 잔세스한스는 계획에 전혀, 전혀, 전혀 없었던 곳이다.
브뤼셀 다음 암스테르담에만 반나절 머문 후 야간열차를 타고 프라하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분좋게 도착한 암스테르담은 그날따라 우중충한 하늘을 내비쳤고 센트럴 역 밖을 빼꼼 쳐다보고는 '아 이거 아닌데' 하고 다시 역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 몰라 찢어온 여행책의 '네덜란드' 파트에는 첫장에는 암스테르담, 두번째 장에는 잔세스한스가 있었다. 두번째 장을 펼치고 그대로 information을 찾아갔다. 그 페이지를 가리키며, 여기 가는 표를 달라고 했다. (표를 왜 달라해......ㅠ 유레일 패스... 그냥 타면된다.. 그렇다...)

앞사람과 마주앉아야 하는 구조의 열차를 탔다. 한국인 남자 무리가 있었고, 중국인 무리, 그리고 알 수 없는 국적의 유럽인들, 그리고 술취한 로컬인... 돈 아끼자고 웨하스 하나 덜렁 샀는데 생각보다 가는 길이 멀어 배가 고팠고 끝도 없는 술주정 소리에 그 길이 더 멀게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한 그곳은 이상하리만큼 하늘과 땅이 가까웠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하늘이 가까이에 있었다. 너무 맑고 밝고 쨍한 느낌. 런던, 브뤼셀, 암스테르담에서 만났던 유럽과는 너무도 다른 느낌.

눈부신 그 길을 걸어 걸어, 지은지 얼마 안된 듯 보이는 깨끗한 다리를 건너 건너, 예쁜 가게들이 좌우로 늘어진 그 모래길을 지나니 어디서 초콜릿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초입에 초콜릿 공장이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 도시가, 그 마을이 그냥 초콜릿이었다.
그냥 온통 그 모든 것을 다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맑은 가을 하늘, 장난감 같던 풍차, 그리고 진짜 장난감 풍차, 오렌지색 지붕, 졸졸 시냇물, 냇가에 비친 하늘을 첨벙대던 청둥오리 한 쌍, 예쁜 꽃들, 치즈 공장에 걸려있던 치즈치즈한 치즈들, 기타치며 노래 부르는 할아버지, 보라색으로 맞춰입은 그 가족, 아 맞다, 그리고 1km쯤 걸었을 때 공터에 주차되어 있던 현대 차까지!! 다리가 아파 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걷고 또 걸었던 기억이 난다.

암스테르담의 우중충했던 하늘이 날 도왔다. 아니, 브뤼셀 도착하자마자 다음 여행지의 차표를 끊어놓은 내 조급증이 도왔다. 아니, 암스테르담 다음 페이지로 잔세스한스를 구성한 그 여행책이 날 도왔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토록 촘촘히 짜놓은 여행계획 사이사이로 날 침범하던 그 우연들이, 나에게 그것이 여행이었다. 계획에 조금만 벗어나도 괴로워하는 내가 계획대로 된게 하나도 없음이 더 행복했던 그 때, 다시 돌아가면 또 다른 우연들을 만나겠지? 그래서 나는 또 여행을 가고,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것과 상관 없이 여전히 촘촘하게 계획을 짜고, 나는 그 반복에 취해 아직도 '여행'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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